일터사역 42강

홈 > 말씀 > 예배
예배

일터사역 42강

42 삶과 행동과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교회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3:15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성경에 나타난 선교적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교회의 정체성과 역할을 올바로 이해하려고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신약의 교회는 구약의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역할을 물려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구약에 선교적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이와 관련한 중요 구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창세기 12:1-3, 창세기 18, 레위기 19

출애굽기 19:3-6

그리고 신명기 4장이 그 구절들입니다.

 

그러면서 열방을 위해 복이 되기 위해 복을 받은 백성.

선택윤리선교

세상을 위한 제사장 나라로서의 전시 백성.

매력적인 반문화 대안 사회

 

그러나 신약으로 오면서 구약과 신약 사이에 전 우주적인 매우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구약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모든 창조세계를 위한 구속을 성취하십니다.

말세의 선물인 성령이 교회에 부어집니다.

물론 이 세 사건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시대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이 땅에 이미 임했으나 아직 온전히 임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 몸의 부활을 포함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할 것입니다.

 

따라서 신약교회의 한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징표가 되는 교회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표지판과 예고편이 되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게시판이 되어야 하고,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줄 예고편이 되어야 한다.

이 부분을 지난 주에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대는 당연히 선교의 시대입니다.

신약교회는 종말론적인 선교적 교회입니다. 매우 중요. 다음에 살펴보자. 사실 오늘 살펴볼까 하고 준비도 다 했다.

 

앞 장에서 레슬리 뉴비긴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이 시대를 세 가지 방식으로 잘 표현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했지만 온전히 나타나지 않은 시간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증언으로 특징지어지는 선교의 시간으로

그리고 성령의 시대로 특정 짓는다.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 이 시대는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와 능력으로 그 일을 감당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처럼 삶과 행위와 말로 하나님 나라를 증언해야 합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아마도 다음 주일까지.

 

1. 예수님이 삶과 행위와 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셨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예수님의 인격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전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생애, 십자가,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의 강림.

아울러 예수님은 자신의 삶과 행위와 말로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레슬리 뉴비긴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바입니다.

마이클 고힌과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박사가 잘 표현.

 

이 사역은 삼중의 방식으로 수행된다. 즉 예수께서 그분의 삶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구현하시며, 예수께서 오는 시대의 본질 자체를 보는 창문인 하나님 나라의 능한 일들-치유와 구제의 일들-을 행하시며그리고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자신의 말씀으로 그에 대해 가르치신다. 이 사역은 하나님 나라가 언젠가 온전히 나타날 것에 대한 기도의 삶 가운데 수행되며, 그날이 오기까지 그분은 사람들의 눈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열리고 믿게 되기를 기도하신다.

 

1) 예수님은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가 함께 하시며, 하나님 나라가 구현되었다는 의미에서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셨습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말. 삶으로 증거하셨다는 말의 핵심은 성령으로 예수님의 삶 속에 하나님 나라의 임재가 함께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구현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우 중요.

 

예수님이 말씀과 행위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셨다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뉴비긴은 삶을 더해서, 예수님께서 삶과 행위와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셨다고 주장한 것은 매우 잘 정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가 정확하게 동일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행위와 말은 삶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세 가지는 분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삶과 행위와 말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시되, 성령 안에서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 일을 수행하셨습니다. 모든 복음서가 이 일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 또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모든 복음서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시점에서 침()례 요한에게 침()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의 모양으로 예수님 위에 임하셨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성령으로 되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4: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4: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이 구절은 예수님의 사역을 보는 페러다임으로 누가복음이 제시하고 있는 구절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우선 이 구절은 예수님이 감당하신 사역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그토록 바라고 갈망하던, 구약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선포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또한 우리는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감당하신 하나님 나라의 일이 성령으로 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속편과도 같은 사도행전도 동일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10:38).

 

그래서 예수님의 삶 속에 하나님 나라의 임재가 함께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구현된 것도 당연히 성령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입니다. 이 부분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2) 예수님은 행위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선포하시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행위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을 증거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 두 가지 다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을 나타내 보이신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두 구절은 마태복음 11장과 누가복음 4장입니다.

 

하나는 마태복음 11장입니다.

1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11: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11: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침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들었을 때, 그분이 오시기로 되어 있던 메시아인가에 대한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 그것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다른 한 구절은 위에서 살펴본 누가복음 4:18-19입니다. 두 구절 모두 예수님이 어떤 행위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셨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물론 이 모든 행위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들이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과 같은 소위 초자연적인 전인적인 치유 사역만을 말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우리가 앞에서 복음의 포괄적인 성격을 살펴보았듯이,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그러한 부분을 포함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것입니다.

 

바로 누가복음 4:18-19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이전에 살펴보았습니다만,

팀 켈러 목사님. 미국의 리디머 교회의 목사. 지금은 몇 년 전에 은퇴. 병 때문에.

정확하게 같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성경이 일관되게 밝힌 분명한 특징이 있는데, 바로 그 나라가 정의의 나라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4:18-19에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그 나라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려고임한다.”

 

보수 진영에서는 이 본문을 순전히 영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영적으로 가난하거나 눌린 사람만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앞서 누가복음을 살펴볼 때 보았듯이, 예수님이 소외층과 빈민에게 엄청난 관심을 쏟으신 것과는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반면에 진보 진영에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순전히 사회.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압제 받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그분이 혁명을 통해 부자를 끌어내리고 가난한 자를 높이려고 오셨다는 것이다(해방신학, 민중신학 등). 그러나 예수님이 경제적 빈곤에서 빈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정치적 혁명가로 오셨다면, 군사 운동이나 정치 운동에 착수하지 않고 말씀 전파에 시간을 다 들이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럼 이 말은? 그 둘 다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1. 예수님이 늘 구원하시는 가난한 자란 일차적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다(5:3). 그들은 자신이 영적으로 파산 상태고 그들의 선행조차도 동기가 썩 선하지 못했으며, 순전히 자비롭고 값없는 은혜로만 구원 받을 수 있음을 기꺼이 인정한다. 부자도 영적으로 가난해지면 구원받지만, 경제적으로 가난해도 이렇게 낮아지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그래서 대반전의 패러다임에 따라 우리는 영적으로 가난해져서 구원받고, 그 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부유해진다.

 

0 Comments
Category

유초등

중고등

청년부

여전도

남전도

사역활동

Login